방 안에는 각종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바닥엔 음식이 묻은 그릇이 널브러져 있고, 벽은 오물로 인해 누렇게 변색됐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 살던 여성이 단 1년 만에 만든 충격적인 방 상태였다.
해당 고시원을 운영하는 A씨는 뒤늦게 이 같은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밀린 월세도 받지 못한 채 세입자 여성을 퇴실 조치시켰다. A씨는 "일주일 동안 문제의 방을 청소했지만, 악취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신의 방을 쓰레기로 채운 세입자, 이제 집을 비워줬으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걸까?
민사 배상은 당연, 재물손괴죄부터 업무방해죄까지 해당할 수도
일단, 임차인(세입자)이라면 누구나 빌린 목적물을 정상적인 용도로 사용할 의무가 있다. 계약이 끝나 임대인(집주인)에게 돌려줄 때도 원상회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고시원을 더럽힌 세입자에겐 최소한 민사상 배상 책임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분석한 변호사들은 "단순 민사뿐 아니라 세입자에 대해 형사 처벌도 가능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쓰레기로 방을 가득 채우고, 벽지를 손상시키는 등 행위로 일정 기간 새로운 임차인을 들일 수 없는 상태를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이 정도라면 형법상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짚었다.
법률 자문
'법무법인 비츠로'의 장휘일 변호사, '법무법인 명재'의 배진성 변호사. /로톡DB·배진성 변호사 제공
법무법인 비츠로의 장휘일 변호사는 "재물이 완전히 소멸되거나 영구적으로 손상된 경우에만 재물손괴죄가 성립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고, 법무법인 명재의 배진성 변호사는 "벽지의 심각한 변색과 악취 등으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재물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경우에도 재물손괴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배진성 변호사는 "택시에 음식물 쓰레기를 던져서, 일정 기간 운행을 하지 못하게 한 경우에도 재물손괴죄가 인정된 판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률사무소 나란의 서지원 변호사도 같은 의견을 냈다. 서 변호사는 "상당량의 오염 물질을 오랜 기간 방에 방치하면 내부가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인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세입자에게 최소한 재물손괴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다.
여기에 더해 업무방해죄까지 검토해볼 수 있다고도 했다. 장휘일 변호사는 "고시원에 살던 여성은 쓰레기와 오물 방치로 심한 악취를 만들었고, 고시원 전체 업무를 마비시킨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시원 운영자인 A씨에 대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나란'의 서지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현강'의 이승우 변호사. /로톡DB
한편, 형사 처벌까진 어렵지만 민사상 배상 책임은 인정될 거라고 본 변호사도 있었다. 법률사무소 현강의 이승우 변호사는 "임차인은 자신이 빌린 목적물 안에서 일정 부분 자유롭게 살 권리가 인정된다"며 "실질적으로 이 사건 세입자에 대해 범죄 고의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주인 A씨로선 세입자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산처럼 쌓여있는 쓰레기. 벌레가 들끓는 그릇. 오물로 변색된 벽. 한 여성이 지내던 고시원 방 모습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고시원 주인은 이 방을 일주일 동안이나 청소해야 했다. 정작 아무런 사과도 없이 퇴실한 임차인, 법으로 보면 어떨까? /'아이러브고시원' 캡처